자기계발/문학,책

우주의 기묘한 작동 법칙, 카르마의 비밀 5가지

성민호 연구소장 2024. 8. 5. 10:00
728x90
반응형
SMALL

카르마. 이 단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어떤 이는 인과응보를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윤회나 운명론을 언급할 것이다.

카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행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혹은 업보라고도 표현된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즉 카르마는 '원인'이 되어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부처는 이를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말했다.

카르마의 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한다. 고대부터 극소수의 성인들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삶을 변화시켰다. 예수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고 말하며,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은 용서와 사랑을 통해 긍정적인 카르마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우주 속에는 우리가 풀지 못한 비밀스러운 법칙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카르마의 법칙이다. 이 불가피성을 지닌 단어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우주란 그 광대한 공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간은 우리의 존재와 신성, 그리고 내면의 진실을 깨닫는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진 이 법칙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탐구해보자.

오늘은 우주의 기묘한 작동 원리, 카르마의 신비로운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구나 고유한 과제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것은 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각자의 과제를 풀기 위해 이 지상에 온 것이다. 이 과제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으로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온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이 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상황은 계속해서 바뀐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은 카르마 법칙에 따라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가지고 온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기 위한 최선의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마찬가지이다.

카르마 법칙은 철저하게 중립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법칙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카르마 법칙을 벌을 주는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종종 쓰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식의 표현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카르마 법칙은 절대로 징벌을 주는 법칙이 아니다. 이 법칙은 당사자에게 그가 쌓은 수많은 카르마를 소멸하고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좋지 않다고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카르마 법칙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해도 그것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사정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균형을 잡고 교훈을 주어 나를 영적으로 더 성장하게끔 인도하는 카르마 법칙의 배려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를 향해 옳은 길로 가게끔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는 실상 없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건 현재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순간은 우리가 과거의 행동과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며, 동시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원인이 된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카르마 법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태도가 우리의 카르마를 결정짓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감사하는 태도로 현재를 대한다면, 이는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을 의식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고, 궁극적으로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인과론.

카르마 법칙은 인과론이다. 하지만 그냥 인과론이 아니다. 카르마 법칙에는 물리적 인과론에는 없는 도덕의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르마 법칙은 인과론과 도덕을 합해서 도덕적 인과론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카르마 법칙은 인간이 도덕적인 완성을 꾀할 수 있도록 돕는 법칙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에는 지선(至善)의 성품을 갖고 있다. 지극한 선에서는 상대의 악을 악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선이 내재해 있음을 안다. 또한 상대의 악을 거울삼아 나의 악을 살피고, 악 속에 선이 숨겨져 있음을 자각한다. 그러면 선과 악의 분별을 내려놓고 지선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불성이라 하며,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성이라 한다. 카르마 법칙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성품을 다시 찾을 수 있게끔 안내하는 법칙이다.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카르마 법칙은 여지없이 우리의 삶에 관여해 궤도를 수정하라고 권한다.

궤도를 수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내가 욕을 해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었다면 카르마 법칙은 언젠가 나로 하여금 그와 비슷한 일을 당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일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본인의 도덕적 성장에 얼마나 많은 저해를 가져오는지 알게 해주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기관에 돈을 기부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여기에도 좋은 과보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기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이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돈을 기부했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더라도 좋은 과보를 기대하기 힘들다.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 것이다.

카르마 법칙에서는 의도와 감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했다면 그에 따른 포상을 해주는 것이다. 좋은 심성을 계속해서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의 관점에서 카르마는 어떻게 작동할까.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 강한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면서 살았다고 하자. 이러한 행동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다. 그런데 다행히 그 생애 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다면 카르마 법칙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일생 내내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고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면 다음 생에는 카르마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일반적인 과보는 이전 생과 반대의 생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전 생에 높은 지위에 있었으니 이번 생에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쉬운 미천한 지위를 갖게끔 카르마 법칙이 안배해 준다. 카르마 법칙의 의도는 간단하다. 남에게 무시당했을 때 얼마나 모욕스러운지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앞으로는 타인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라는 것이다. 이때 당사자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카르마 법칙이 주는 교훈을 받아들이면 이 카르마는 자동으로 해소된다. 동시에 그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한다.

인간에게는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가 있다. 그것은 자아실현, 더 나아가 자아초월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시되는 것이 도덕성의 완성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도덕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갖고 있다 한들, 또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덕성의 완성은 곧 인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이 길로 가지 않으면 그때 카르마 법칙은 여지없이 개입한다. 이 경우 카르마 법칙은 우리에게 고통을 선사하며, 그 고통을 통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우리의 도덕적 일탈은 카르마 법칙이 여지없이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스위치인 셈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모든 것은 전생에 있었던 일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니 다 결정된 게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카르마 법칙은 결정론이 아니라 인과론이다. 이것은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와 직결된다. 카르마 법칙에 따르면 인간이 겪는 모든 사안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와 동시에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카르마 법칙에 따라 나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게끔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 일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생에 어떤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카르마 법칙으로만 따지면 나는 이번 생에 그 카르마를 되갚기 위해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생에 그를 죽일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카르마가 생기는 일을 종식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고 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전생의 원수를 죽이는 일을 포기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원수를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와 얽혀 있는 카르마는 소멸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카르마를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의 발생에 대해 말할 때 자유의지와 결정론 중 하나만을 택해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각 사안마다 그 결정된 정도와 자유로운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은 확고하게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안은 본인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줄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생각해보자. 그 강아지는 줄의 길이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제한된 자유이다. 그 줄 너머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자유롭지만, 그 이상은 안 되는 자유도 있다. 줄의 길이에 따라 자유로운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내가 카르마로 이미 깊이 새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결코 바꿀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일들을 피하거나 저항하기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사안이 있다. 이번 생의 삶에서 여러 사건들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왜 이렇게 정해놓고 지상에 왔느냐는 것이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환경을 계획한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여러 사건을 세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사건이 이미 결정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따질 게 아니라, 해당 사건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인 동시에 자유의지가 부여된 반결정론, 카르마의 법칙이 지향하는 바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이 질문은 대단히 거창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쯤은 던져보았을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각자 풀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이 생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어, 이번 생에 남자로 태어나 인생의 전반부에는 공부만 하다가 30대 중반에 교수가 되어 그렇게 70여 년을 살아온 노인이 있다. 그는 그것이 마치 그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과 다른 그 자신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번 한 생만 보는 제한적인 시각이다. 카르마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을 살아왔다. 그 많은 생을 사는 동안 성별도, 모습도 계속 바뀌었을 것이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을 것이며, 전혀 다른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다양한 성격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이번 생에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카르마 법칙에 따라 내가 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영혼의 형태로 영혼들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지상에서 해결해야 할 카르마를 많이 갖고 있다. 그러다 몇몇 카르마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지상에 형성된다. 이 여건은 자신이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여건이 만들어지면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보통 마스터라고 불리는 존재인데, 이들은 더 이상 환생하지 않는, 영적으로 매우 뛰어난 고급 영혼이다. 이들은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 영혼의 세계에 머물면서 환생을 거듭하는 일반 영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마스터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생에 내가 어떤 카르마를 소진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에는 엄청난 카르마가 저장되어 있어 그것을 한 생에 다 소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다음 생과 연관이 있는 카르마를 골라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선정한 카르마가 곧 지상으로 내려가 살게 될 생애에 풀어야 할 평생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이번 장을 시작하면서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우리 인간이 사는 이유는 바로 내가 선정한 이번 생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사는 게 힘들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죽으면 다 끝인 것 같은데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이번 생에 내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그 답을 얻기 위해 올인해야 한다. 이 작업은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이다. 언제 이 작업을 시작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늦은 때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이다. 당신은 살아야 할 이유를 공연히 먼데서 찾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우리의 영혼 안에 정보 형태로 저장되어 있으니, 자신을 반추해보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내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고향.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상의 물질적인 세계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물질계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물질적인 가치, 돈이나 권력, 향락, 물욕에 빠져 물질적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이 지구가 아니라, 지구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가는 영적 세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된다. 사람들은 나 자신을 생각할 때 육신을 먼저 떠올리고, 그 육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육신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란 누구인가. 나는 내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은 내 영혼이 지상에서 활동하기 위해 입는 지구 옷일 뿐이다. 그러다 이 육신이 너무 낡아 영혼을 담아놓을 수 없게 되면 영혼은 육신을 떠난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많은 것을 체험하면서 배우고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임시 거처일 뿐이다.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이 지상에 오기 전에 있었던 영적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상에 태어나면서 그 세계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어버린다. 사실, 의도적으로 망각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 생에서 가져온 과제, 즉 카르마를 풀려고 할 때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전 생에서 그 생에 할당되었던 과제를 푸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그 과제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이번 생으로 넘어왔다. 여기서 만일 이전 생에서의 기억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또다시 그 방법을 쓰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생에서 새로운 시도와 배움을 통해 카르마를 해소해야 한다. 과거의 기억을 지운 상태에서 순수한 마음과 자유의지로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바로 영적 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지구에서의 삶은 단지 임시 거처일 뿐이며, 우리는 여기서 배움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나아가는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리뷰

본문의 일부 내용은 책,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카르마 강의'와 나의 개인 견해를 담았다.

신은 카르마를 통해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신성을 찾을 때까지 인간을 돌보아준다고 했다. , 카르마는 우리를 징벌하기 위한 법칙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카르마는 항상 우리 편에 서 있다.

당신이 지금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관점을 바꿔보자. 이것은 카르마의 법칙이 당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신이 선택한 하나의 시련이자 영적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마다 카르마가 나에게 부여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낙담할 필요가 없다. 기회는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카르마 법칙이 환경을 수정해서 우리에게 또다시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카르마가 전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당신의 카르마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카르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눈을 감고 당신의 내면의 울림을 들어보라. 우리의 영혼은 신성한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카르마는 그 여정에서 우리를 이끄는 빛이다. 매 순간의 선택이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의 내면에 깃든 신성은 그 길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을 따라가라.

YouTube

\

728x90
반응형
LIST
사업자 정보 표시펼치기/접기
성소장 연구소 | 성민호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천로 83-1 | 사업자 등록번호 : 891-52-00633 | TEL : 010-3187-0919 | 통신판매신고번호 : 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