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꿈을 꾸는가? 무의식 저편 너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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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꿈을 꾸는가? 무의식 저편 너머의 비밀

성민호 연구소장 2024. 9. 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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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해 보이는 꿈조차 의미로 가득 차 있다.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옛부터 꿈은 인간의 세계관이나 영혼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꿈이란 신 혹은 악령의 계시를 나타내는 어떤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으며,

인간의 미래를 알게 해주는 예지적 기능까지 있다고 믿었다.

 

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랫동안 연구 되어왔다. 흔히 사람들은 꿈에서 어떤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은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더 나아가 꿈에서 예시적 기운을 알아내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꿈의 내용을 의미 있는 어떤 내용으로 대체하고픈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무의식의 세계를 처음 발견한 프로이트는 꿈은 하나의 소망충족이고, 꿈의 동기는 하나의 소망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칼융은 꿈은 우리의 정신에서 소외 받았던 무의식이 우리에게 대화를 거는 것으로 개인이 직면한 문제나 어려움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늘은 인류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꿈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무의식의 텃밭.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꾼다. 인간에게 꿈은 익숙하다. 익숙해서 우리는 모두 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 꿈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자신의 명운을 점치기도 한다. 해석하기 난해하거나 기이한 꿈을 꾸었다면, 그 방면에 식견이 높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 꿈 해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말이지 우리 주변에선 너무나 흔한 일이다. 꿈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 않은 일반인들조차 꿈에 대해 낯선 감정 없이 각자가 지닌 통념을 기반으로 꿈을 해석하는 일은 그래서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과연 꿈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수면 중에 나타난 꿈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지시하긴 하는 것일까. 그것은 각성의 영역에 있는 세계일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꿈의 세계에 대해 언급했으나, 꿈을 꾸는 사람들마다, 그리고 그 처지나 환경에 따라 꿈의 내용이 천차만별이어서 일관성 있는 어떤 원칙을 수립하기란 어려웠다. 후일 프로이트는 꿈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간의 정신 영역은 크게 의식, 무의식, 그 중간단계인 전의식으로 나뉜다. 인간의 욕구와 본능을 통제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꿈은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무의식에는 성적 욕구 같은 본능적인 욕구를 비롯, 다양한 감정과 충동이 억압되어 있다.

꿈의 과정은 우리의 의식과 전의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이 소망 충족이라는 단계를 밟는 과정이다. 그러나 수면을 취하는 도중 무의식의 소망 충족 시도가 평정을 위협할 정도로 전의식을 뒤흔들게 되면 꿈은 즉시 증단되고 각성된 전의식이 꿈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꿈은 자유롭게 방임된 무의식의 흥분을 다시 전의식의 지배하에 끌어들이는 임무를 맡고 있다. 아울러 꿈은 무의식의 흥분을 배출시키는 밸브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의식의 수면을 보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꿈이란 억압된 소망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에게 있어 꿈은 성적인 소망을 드러낸 묘사가 매우 많았으며, 미래 보다는 과거를 알려준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에게 꿈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를 가리키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흔히 말하는 예지몽이나 미래를 암시한다는 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꿈이 미래를 예시한다는 낡은 믿음에 진실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꿈은 어떤 소망을 충족된 것으로 보여주면서 우리를 미래로 이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이 미래는, 결코 깨지지 않는 소망에 의해 과거와 닮은 모습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꿈에 대한 세계에 하나의 열쇠를 내민 그였지만, 그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꽤 많이 있었다. 모든 꿈이 소망 충족에 기인한다는 주장의 허점과 지나치게 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결별했던 그의 제자 칼 융은 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내놓았을까?

 

무의식이 건네는 대화.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칼 융은 스승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융은 꿈을 단순한 소망 충족의 도구로 보지 않았다. 그는 꿈이 개인이 직면한 문제나 갈등을 반영하며, 무의식과 의식이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주장했다. 융에 따르면, 꿈은 개인의 삶에서 억압된 감정이나 해결되지 않은 갈등, 그리고 심리적 성장을 위한 지침을 담고 있다.

융은 꿈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꿈이 단순히 개인적인 소망 충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깊이를 탐구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그의 이론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집단 무의식'이다. 융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무의식의 깊은 층이 있으며, 이 집단 무의식에는 인류의 보편적 경험과 원형이 저장되어 있다고 보았다. 꿈은 이러한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상징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문제를 넘어 인류 전체의 경험을 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상징이나 이미지가 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경험과 연결된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은 각 개인의 문화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그 근원은 집단 무의식에 있다. 융은 이러한 꿈 해석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정신적 성숙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융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성적 욕망 중심의 해석과 달리, 인간 정신의 더 깊고 넓은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는 꿈이 단순한 과거의 반영이나 소망 충족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현대의 발견.

현대 과학은 꿈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 왔다. 과거에는 렘(REM) 수면 단계에서만 꿈이 나타난다고 믿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렘 수면 단계에서도 꿈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꿈이 단순히 수면의 특정 단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전반에 걸쳐 다양한 신경학적 과정이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렘 수면은 뇌파가 활발해지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 단계로,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서 생생한 꿈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 연구는 비렘 수면에서도 꿈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꿈은 렘 수면에서의 꿈과는 다른 특징을 가질 수 있다. 비렘 수면의 꿈은 보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일 수 있으며, 감정적 반응이 덜 강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꿈의 내용과 빈도는 우리의 감정 상태, 스트레스 수준, 그리고 일상의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겪은 강렬한 감정이나 스트레스는 꿈의 내용에 반영될 수 있으며, 이는 꿈이 단순한 무의식의 반영을 넘어, 뇌가 감정적 기억을 처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꿈의 정확한 목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꿈이 기억을 강화하고, 감정을 정리하며, 문제 해결을 돕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꿈이 학습한 내용을 강화하고, 창의적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스트레스와 불안을 해소하는 수면 중 뇌의 정서적 회복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의 본질에 대한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꿈이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없다. 이 때문에 꿈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주제이며,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꿈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신경과학, 심리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연구들이 꿈의 본질과 기능을 밝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이 모두 합쳐지더라도, 꿈이 가지는 깊이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일성과 무한성.

카를 융은 그의 저서 기억, , 사상에서 카르마와 재생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며, 이는 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융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이 과거의 인생 경험이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향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카르마의 개념과 맞물리며, 꿈을 통해 이러한 과거의 경험이나 영향이 현재의 삶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융은 꿈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카르마적 요소들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꿈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인간이 자신의 인생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융은 살아가면서 감당하고 있는 카르마가 내 전생의 결과인지, 혹은 내 속에 유산을 모아 남겨준 조상의 소산인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본인조차 답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내가 먼 옛날에 살았고 거기서 지금도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 어떤 물음에 부닥쳤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내게 부과된 과제를 풀지 못했으므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다고 말이다. 추측하기로는, 내가 죽으면 나의 한 일들이 따라올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요한 문제는 내가 생의 마지막에 빈손으로 서 있지 않는 것이다.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오로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조상이 이미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또한 대답이 요구되는 하나의 물음이 개인적인 성취를 통해 세계 속에 생겨나게 되는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가 제기하는 물음과 대답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내 카르마를 가진 나 자신 혹은 누군가가 보다 완전한 해답을 주기 위해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가 어떤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한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나는 수백 년 동안 휴식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 있다가, 그와 같은 것에 흥미를 느끼는 누군가를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새롭게 과제에 임하여 소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지금까지의 과제를 다 마칠 때까지 사람들이 이제 얼마간 휴식기간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저곳에서도 이어지는 삶을 가정한다면, 우리는 정신적인 것 이외의 어떤 다른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삶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융의 관점에서, 카르마는 단순히 전생의 행위로 인한 결과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작용한다. 이는 꿈이 단순히 무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영적 성장과 연결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접지몽.

옛날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고 스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장주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장자는 분명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장자는 꿈에서 깨어비린다. 나비는 어디론가 사리지고 그 자리에 장자 본인만이 덩그러이 홀로 남겨진 것이다. 이때 장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것이, 혹은 내가 믿고 있던 것이 나만의 꿈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이 물음을 천천히 곱씹어 본다면, 우리는 타자와 세계를 의식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비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만의 꿈일 수 있고, 내가 장자라는 생각도 나만의 꿈일 수 있다. 장자의 이야기는 짧지만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현실을 관조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때때로 현실에 매몰돼, 그 현실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 조차 잊어버리고 앞만 보며 미친듯이 달려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우연 같은 운명적인 사건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것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도 쉽게 전부가 아니게 되는 사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것이 실상 가장 소중한 것 이었다는 이중적인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한 여름밤의 꿈. 그것은 꿈이자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는 작은 배려이자 메시지이다.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며 자그마한 쉼표 하나를 찍어둘 때이다. 이 배려 깊은 메시지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다시금 천천히 한걸음을 내딛을때, 우리는 다음 문장의 또 다른 쉼표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여정의 마침내 온전한 마침표를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

영상의 일부 내용은 책,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칼융의 기억, 꿈 사상, 장자의 제물론,

그리고 나의 개인견해를 담았다.

우리는 매일 수 많은 꿈을 꾼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 잊혀지는 시시콜콜한 꿈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도 강렬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뇌리 속에 강렬히 자리잡기도 한다. 우리는 그러한 강렬한 꿈의 의미를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장자는 생생한 꿈에서 깨어나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의심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이 진정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또 다른 꿈에 불과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실제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물음을 던지며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사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결국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또 다른 꿈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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