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세상엔 어디나 모든 것에 들러붙어 무엇이든 항상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 천민 무리가 있다. 그들은 무수히 떼로 몰려있는 해충 같은 존재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무료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스스로 정신적 온기를 충분히 지닌 사람은 굳이 무리에 섞일 필요가 없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한 생활로 이중의 이점을 얻는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한다는 이점이고, 둘째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점이다. 모든 교제에는 강요와 고충,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감안할 때 두 번째 이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사교는 때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불합리한 사람과도 접촉하게 하므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비사교적인 사람은 그런 사교성을 지닐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고뇌는 사교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다.
고독을 사랑하는 습관
남달리 뛰어난 개성을 지닌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고난 고립의 성향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나이가 들면 오히려 자유로운 기분을 갖게 된다. 고립의 습관에 자기 자신을 친구로 삼는 습관을 더한다면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엔 고독을 사랑하는 습관을 어렵게 가질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마음이 아주 편하고 간단한 것이 된다. 말하자면 고독한 마음이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서로 간의 순응과 타협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회는 그 범위가 넓을수록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자유롭기 때문이다. 구속은 어떤 사회에서든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는 희생을 요구하는데 자신의 개성이 강할수록 그 희생은 커진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아의 가치에 정확히 비례해서 고독을 사랑하거나, 고독을 피하는 것이다.
내면이 풍요로우면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내면의 풍요로움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 만족을 누릴 줄 알기 때문에 타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 이상의 희생을 굳이 치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공동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은 지극히 사교적이며 순응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참기보다 남을 참기가 더 쉽다. 세상에서는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중시되지 않으며, 하찮은 것들이 중시되고 있다.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들이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사실이 입증된다. 스스로 정당한 것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유를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제한하고 스스로에게 흔쾌히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가 된다는 걸 알 것이다.
내면의 공허는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사교적으로 되는 것은 고독한 상태의 자기 자신을 견딜 능력이 없어서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뿐만 아니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내면의 공허와 권태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정신에는 스스로를 움직이게 할 탄력이 부족하므로 술로 탄력을 높이려고 하다가 정말로 술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는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자극, 자신과 동류인 술꾼에 의한 가장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극이 없으면 그들의 정신은 정신 자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려 답답한 무감각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각자의 인간은 인류라는 이념의 한낱 조그만 단편에 불과하므로 어느 정도나마 인간이라는 완전한 의식이 생기도록 하려면 타인에 의해 수많은 보충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 반면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인간으로, 단편이 아닌 통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은 금광을 얻은 것과 같다
고독과 일찍 친해져서 고독을 좋아하게 된 사람은 금광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곤궁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곤궁에서 벗어나면 이번엔 무료함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러한 곤궁과 무료함이 없다면 누구나 혼자 지낼지도 모른다. 고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고독은 우리를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 만들어 자신의 본성에 맞는 본래적인 행복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고독을 선택한다
외국에서 수입할 물건이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나라가 가장 행복하듯, 내면의 부가 충분해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거나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타인이나 외부에 크게 기대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듯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사교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고독을 선택한다. 인간이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좁은 범위 내에서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 것이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나쁜 사회에도 만족한다
재앙도 함께하면 견디기가 쉬워진다. 사람들은 무료함을 재앙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무료함을 견디려고 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근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불과하듯이 무리를 지으려는 인간의 본능도 기본적으로는 직접적인 본능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그런 본능이 있는 것은 사회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고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의 적막함이나 단조로운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쁜 사회에도 만족하고, 어떤 사회에서든 살다 보면 필수적으로 생기는 역겨운 일이나 강요도 그냥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혐오감이 커지면 자연히 고독의 습관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를 아쉬워하지 않고 대단히 편한 마음으로 혼자 지낼 수 있다. 그리고 고독한 생활이 주는 유익함에 점차 익숙해진다.
신체적 고독이 정신적 고독과 일치하면 행운이다.
고독한 상황에 있을 때 가련한 인간은 자신의 가련함을 느끼고,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신의 위대함을 느낀다. 요컨대 사람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의 순위에서 상위에 있을수록 고독한 상태에 있다. 게다가 그것은 본질적이고 불가피한 고독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고독이 정신적인 고독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에겐 행운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질적인 무리가 주위에 잔뜩 모여들어 그에게 방해가 되고, 그의 자아를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불에서 적절한 거리를 둔다.
고독한 상황에 있을 때 가련한 인간은 자신의 가련함을 느끼고,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신의 위대함을 느낀다. 요컨대 사람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의 순위에서 상위에 있을수록 고독한 상태에 있다. 게다가 그것은 본질적이고 불가피한 고독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고독이 정신적인 고독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에겐 행운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질적인 무리가 주위에 잔뜩 모여들어 그에게 방해가 되고, 그의 자아를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꽃으로 핀다
나는 어떤 들꽃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과 완벽함에 놀라워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꽃이, 이 꽃의 아름다움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화려하게 피어 있다가 시들어 버리겠군.” 그러자 꽃이 말했다. “이 바보 같으니!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꽃으로 피는 줄 아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꽃으로 피는 거야.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피는 거라고. 나의 즐거움과 기쁨은 꽃이 핀다는 데 있어. 내가 존재하는 데 있단 말이야.”
자신을 위해 탐구한 것만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색하고 탐구한 것만이 타인에게도 도움을 주며, 처음부터 타인을 위해 그러한 것을 하는 건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사색하고 탐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완전한 정직성이라는 특성과 연관되어 있으니,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는 않으며, 자기 자신에게 알맹이 없는 호두를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궤변이나 쓸모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읽기 위해 지불한 수고를 즉시 되돌려줄 것이다.
허영심과 자존심
인간은 약한 본성을 타고나기 때문에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즉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리의 행복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좋은 평가를 받아 나름대로 허영심이 충족되면 다들 속으로 기뻐하는 것을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면 목에서 끄르륵 소리를 내듯이 인간도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분야에서 칭찬을 받으면 그것이 비록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 해도 얼굴이 밝아진다. 그와 반대로 무시당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즉각 모욕감을 느끼며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입에 발린 말이나 상처 주는 말에 가능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두 가지 말 모두 같은 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타인의 생각과 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견해에 상관하지 말라
타인의 의식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말라.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얕은지, 신념이 얼마나 가볍고 천박한지, 견해가 얼마나 비뚤어지고 왜곡되었는지, 그 모든 걸 제대로 안다면 타인의 견해를 점차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하찮게 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타인의 견해를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이다.
행복을 놓쳤다고 한탄할 것인가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극히 작은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렌즈로 확대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은 그 지속성으로 인하여 사물과 인간의 극히 미미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허상을 주기 위한 우리의 머릿속에 든 하나의 장치다. 우리가 지난날에 이런저런 행복이나 향락을 즐길 기회를 놓쳐 버렸다고 애석해 하거나 한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것을 가졌다고 한들 지금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말라 버린 미라만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란 바로 지상의 모든 쾌락의 허망함을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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