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공손하지 마라.
약속한 것이 의로움에 가깝다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고 남을 공경하되 예에 가까워야 치욕스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의지하되 인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그를 존경하고 지도자로 삼을 수 있다. 거짓이나 도리에 어긋나는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는 것이다. 공손한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비굴하게 보여 수치를 당할 수 있다. 따라서 공손함에도 절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가야할길을 알고 일관되게 걸어라
나의 길은 하나로 꿰어져 있다. 나는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것을 단 두 글자로 요약한다면, 바로 충과 서다. 충음 중심으로 어떤 일을 할 때 한마음으로 집중하는 마음이요, 서는 여심으로 상대와 내가 같이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충심과 성의를 다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타인에게는 배려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임해라.
모두가 똑같은 곳에 도달할 순 없다.
함께 배울 수는 있지만 모두 도를 행하는 데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도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모두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모두 권도를 행할 수 는 없다.
진정으로 도를 즐기는 사람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면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듣기 좋게 꾸며대는 간사한 말, 보기 좋게 아양 떠는 얼굴 표정, 이러한 기교에는 인의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다. 사람을 사귈 때 아첨과 아부,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미색을 경계하라.
남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말만 번지르르하게 꾸며대고 진정성도 없이 남의 비위만 맞추는 사람치고 진실한 사람은 적다.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다섯가지 미덕과 네가지 악덕.
자장이 공자께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바른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의 미덕을 존중하고, 네 가지 악덕을 물리치면 바른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
자장이 물었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게 일을 시키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으며, 뜻을 이루고자 하면서도 탐욕을 부리지 않고, 너그러우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자장이 물었다.
“어떤 것을 가리켜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이롭다고 여기는 바에 따라 그들을 이롭게 한다면, 이것이 곧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또한 부려도 될 만한 일을 택하여 부린다면 그 누가 원망하겠느냐? 인을 실현하고자 하여 인을 이룬다면 어찌 탐욕스럽다 하겠느냐? 사람이 많든 적든, 또한 권세가 크든 작든 감히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너그럽되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군자가 의관을 바르게 하고 태도를 위엄 있게 하여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한다면 이것이 곧 위엄은 있으되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자장이 또 물었다.
“그러면 무엇을 네 가지 악덕이라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서 잘못했다고 죽이는 것을 잔학하다하고, 미리 주의를 주지 않고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것을 포악하다고 하며, 명령을 내리는 것은 태만히 하면서 기일만 재촉하는 것을 일을 그르치는 짓이라 하고, 사람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주어야 함에도 출납에 인색한 것을 옹졸한 벼슬아치라 하는데, 이것이 네 가지 악덕이다.”
세가지 반성.
나는 날마다 세가지 일에 대하여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있어 마음을 다하지 못한 것은 없었는가?
친구와 사귐에 있어 신의를 저버린 일은 없었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었는가?
자기반성은 수양과 인격 도야의 바탕이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으며 실수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나 허물을 깊이 반성하고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타인을 제대로 보는 눈을 깨쳐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한다.
학문은 자기 수양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설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거나 불평을 하면 안된다. 그러면서 항상 나보다 현명하고 덕이 높은 살마을 찾고 그 사람에게 배우고 나 자신을 발전시켜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뜻을 확고하게 세웠다. 마흔 살에는 미혹하지 않게 되었고, 쉰살에는 하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알았다. 예순 살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이해했고 일흔살에는 마음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배우되 생각하지 아니하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독단에 빠져 위태롭다.
사람다운 삶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옳은 도를 통하여 마음에 깨달음이 있으면 곧 죽는일이 있어도 좋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한 편생 사는 것보다 잠시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은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사욕을 이겨내고, 예부터 지켜 내려온 사회의 규범, 사람이 지켜야 하는 도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하루 만이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게 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온다. 인을 행하는 것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느니라.
중용의 도를 갖춘 사람이 없다.
중요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뜻이 높은 사람이나 고지식한 사람을 택하겠다. 뜻이 높은 사람은 진취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은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기쁘게 하려고 노력해도 도리에 맞지 않으면 군자는 기뻐하지 않지만, 사람을 부릴때는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일을 맡긴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그를 기쁘게 하려 할때는 올바른 도리로 하지 않더라도 기뻐한다. 그러나 소인이 사람을 부릴 경우에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진정한 배움
어진 사람을 어질게 여기는 것을 아름다운 미인을 좋아하듯이 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 자신의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김에 있어 자신의 몸을 바칠 줄 알며, 벗과 사귐에 있어 언행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운 게 없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일러 배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
주제넘게 참견하지 말라
굳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써 도를 지키고 높여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마라.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모습을 드러내고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조용히 숨어 살아라. 나라에 도가 행해지는데 가난하고 천하게 산다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 부귀를 누린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네가지는 피하라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전혀 취하지 않으셨다.
첫째는 사사로운 뜻을 갖는일을 갖지 않음이며, 둘째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일이 없었음이며,
셋째는 고집하는 일이 없고, 넷째는 자신만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다.
도는 계속 추구해야한다.
학문을 비유컨대, 산을 쌓아 올림과 같다.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중지했다면 그것은 내가 중지한 것이다. 또 비유컨대 땅을 평탄하게 고르는 데 있어 흙 한 삼태기를 덮어도 일이 진전되거늘 그것도 내가 한 것이다. 줄기찬 노력으로 끝내 일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끈기의 부족으로 일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에 도중하차 하는 사람도 있다. 전진하여 일을 완성하든, 중단하여 실패로 끝나든 그 일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세상의 법칙
싹은 돋았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꽃은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구나. 같은 씨앗을 뿌려도 어떤 것은 싹을 틔우고 어떤 것은 싹조차 틔우지 못한다. 또 싹이 나와 자란다 하더라도 결실을 맺는 것도 있고, 맺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사람도 이와 마친가지이니.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삶은 참으로 안타깝도다.
충고를 들었으면 잘못을 고쳐라.
올바른 말로 일러주는 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말에 따라 잘못을 고침이 더 중요하다. 귀에 달게 칭찬하는 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의 참뜻을 찾아냄이 더 중요하다. 기뻐하면서도 참뜻을 찾아 행하지 않고 따르면서도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말하랴.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죽음에 대하여 여쭙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자공이 물었다.
“사와 상 가운데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조금 못 미친다.
“그러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장은 기상이 활달하고 생각이 진보적이었고, 자하는 만사에 조심하며 모든 일을 현실적으로만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자장은 천하 사람이 다 형제라는 주의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자하는 ‘자신만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가리켜 중용中庸이라고 하는데, 공자는 중용을 매우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하루만이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게 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온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느니라.”
스스로 돌아보아 허물이 없게 하라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마우가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를 돌아보아 허물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명성과 통달
자장이 물었다.
“선비는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엇이냐?”
이에 자장이 대답하였다.
“제후의 나라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나고, 경대부의 영지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명성이지, 통달이 아니다. 참으로 통달하는 사람은 성품이 강직하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남의 기색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한다. 그래야 제후의 나라에서도 통달할 수 있고 경대부의 영지에서도 통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을 얻기만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인을 취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인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처신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이 곧 제후의 나라에서도 이름을 내고, 경대부의 영지에도 이름을 내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
더불어 말할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더불어 말하지 않을 것을 더불어 말하면 말을 낭비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고 말을 낭비하지 않는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기게 된다.
진정한 군자
군자는 자신의 능력 없음을 걱정할 뿐,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 군자는 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로써 행하며, 겸손한 몸가짐으로 드러내고, 신의로써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군자로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은 법이다.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평생토록 지켜나갈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않는 것이다.”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
유익한 벗이 셋이 있고, 해로운 벗이 셋이 있다. 마음이 곧은이와 성실한 이, 견문이 많은 이와 벗하면 유익하다. 반면에 편벽한 이와 아부하는 이, 말을 잘 둘러대는 이와 사귀면 해롭다.
유익한 즐거움과 해로운 즐거움
유익한 즐거움이 셋이 있고, 해로운 즐거움이 셋이 있다. 예악의 절도를 따르기를 즐거워하고, 남의 착한 일을 말하기를 즐거워하며, 현명한 벗을 많이 사귀기를 즐거워하면 유익하다. 교만한 쾌락에 빠지기를 즐거워하고, 하는 일 없이 놀기만을 즐거워하며, 주색의 쾌락을 즐거워하면 해로울 뿐이다.
군자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아홉 가지가 있다. 사물을 볼 때는 명확하게 보고, 들을 때는 분명히, 얼굴빛은 온화하게 하며, 태도는 공손하게, 말할 때는 진중하게, 일을 할 때는 신중하게, 의심이 날 때는 질문을 주저하지 말고, 화가 날 때는 후환을 염두에 두고, 이익을 보게 되면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의를 올바르게 행하기는 어렵다.
선한 일을 보면 마치 거기에 미치지 않아 안타까운 듯 간절하게 추구하고, 선하지 않은 일을 보면 끓는 물에 손을 넣은 듯 재빨리 피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고 그런 말도 들었다. 숨어 삶으로써 자신이 뜻하는 바를 추구하고, 의로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도를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은 들었지만 아직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인을 이루는 다섯가지.
자장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다섯 가지 덕목을 행할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인이 된다.”
“청컨대, 그 내용을 여쭙고 싶습니다.”
“공손함, 관대함, 믿음직스러움, 민첩함, 은혜로움이 그것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관대하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며, 믿음직스러우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을 쌓게 되고, 은혜로우면 다른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백이와 숙제로다! 유하혜와 소련은 비록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이치에 맞고 행동은 생각과 일치하였으니, 그들은 그렇게 했을 뿐이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였으나 몸가짐이 깨끗했고 세속을 떠난 것이 시의에 적절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들과 달라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없다.
공자는 춘추시대 유학자로 사상적 측면에서는 동아시아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인(仁)' 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인(仁)이란, 도덕적, 인본주의적, 인문주의적인 의미의 '사람다움', 즉,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말한다.
공자 논어의 인은 남을 아끼는 것이다. 이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을 대할 때 그러하듯이, 배려하고 걱정하는 등, 조건없이 남을 챙기고 아끼는 마음이 "사람다움"의 본질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배신 속에서 죽었기에 '남을 챙기고 아끼자. 그래서 사람답게 살자.'는 공자의 외침은 당시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크고 작은 영감을 주었다.
YouTube
'자기계발 > 문학,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운이 들어올때 나타나는 강렬한 징조 5가지 (0) | 2023.11.06 |
---|---|
다산 정약용이 말하는 반드시 피해야 할 인간관계 (1) | 2023.11.01 |
부처님 명언, 석가모니 인생조언 30가지 (0) | 2023.10.06 |
'혀를 잘 다스려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명언 (0) | 2023.09.15 |
'고독' 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명언 (0) | 2023.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