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로마서 묵상 中
칼 융은 생태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우연한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2가지 우연한 현상이 짝을 이루어 발생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융은 이런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동시성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동시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뚜렷한 인과관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 현상은 분명 실존한다고 말한다.
동시성은 많은 사람이 활용하고 있는 흔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통해 앞날을 예측하는 것을 징조라 한다.
징조는 자연계에서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한 조각을 분석해 전체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운명이란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발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신이 숨겨왔던 비밀,
징조와 운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신의 비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그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의 징조일까. 징조란 원래 희귀하게 일어나는법이다. 우연이 여러번 겹친다거나 아주 기이한 사건들을 대개 징조라 일컫는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은 징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일회성 우연에 그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징조가 나타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차츰 세상은 기적으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미래는 조용히 찾아온다. 파도는 한 줄기씩 오지 않는다. 태풍도 바람 한줄기만 불어오지 않는다.
그렇다. 징조란 넓은 범위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집단으로 일어난다. 인간 사회에 있어 유행이라는 것도 실은 집단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징조는 이런 집단적 현상에서 비롯된다. 운명 또한 잘될 때는 딱 하나만 잘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함께 술술 풀려나간다. 이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무슨일이 발생하면 그 자체만 보지 말고 이로 인해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무엇과 연결되어 있고, 원인이 무엇이며, 결과는 또 어떻게 될지를 넓게 살피는 것이다.
오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을 살피는 것이다. 모든 현상이 미래의 단서이기 때문이다. 오늘 일어난 일은 그 자체만으로보면 시간의 역사일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징조를 살피면 신의 비밀에 다가가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조용히, 소리 없이 찾아오는 징조에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뜻이 있다. 얼핏 보기에 다른 사건도 뜻으로 보면 같은 것이 많다. 이를 살피는 것이 삶의 비밀을 살피는 것이다. 세상일은 같은 맥락의 사건이 이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징조는 미래에 대한 힌트를 미리 받는 것이다. 힌트를 눈치 챈 사람은 미리 조심하고 방비할 수 있다.
또 다른 비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은 그 사람 자체다. 뇌나 몸은 영혼의 소유물일 뿐이다.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도 바로 영혼의 운명인 것이다. 주인공이고, 주체이고, 최고의 가치인 영혼은 적당한 조건을 갖추면 우리에게 정착한다. 이것이 바로 출생이다. 영혼은 공간 이전의 존재로 우주 전체를 바로 볼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영혼이 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깃들면 탄생 이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몸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이때부터 영혼은 몸에 딱 붙어서 몸과 하나가 된다. 이제 주도권이 몸으로 넘어간다.
영혼은 몸에 의해 부자연스러워지고 그 상태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 영혼은 원래 우주 전체를 바라보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몸이 생겼기 때문에 그 능력을 잊어버린다. 오로지 몸만을 바라보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생이란 축복인가. 구속인가.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영혼은 몸을 얻음으로써 무한한 자유, 신통력을 잃었지만 대신 삶이라는 체험의 장을 얻었다.
사람이 가끔 육감이 동하고 신통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영혼이 몸을 잠깐이나마 떠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뇌를 신통력을 걸러내는 필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출생이란 것은 영혼이 신통력을 버리게 되는 원인이자 계기다.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공간에 있지 않다. 이 말은 공간 이전, 4차원 또는 공간 내면 등을 뜻하는 것으로 영혼은 초월적 존재다. 공간에 있지 않으니 초월적 존재라는 것뿐이다. 영혼은 공간의 내면에 존재하며 공간 밖에 있는 존재와 교류한다. 이 교류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한다. 죽으면 이 교류가 끝날 뿐 영혼 자체는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없다면 사람은 한낱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죽으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고, 살아 있을때의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죽는 순간 몸이라는 물질 기계가 없어져 버리고, 그 후에는 남는 것이 없다.
뜻이란 영구적일 때에 한해서 있다고 봐야 한다. 언젠가 소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뜻이 아니다. 뜻이 영원하지 않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과 운명.
운명의 흐름을 보면 운명이란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발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단면은 모자이크처럼 다양하고, 그 다발의 여러 가닥을 따라 가보면 어떤 것은 도중에 사라져버리고 어떤 것은 길게 이어져간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새로 운명의 다발 속으로 들어선다.
어떤 사람은 운명의 항로가 단순하다. 또 어떤 사람은 그 항로가 아주 복잡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대개 운명의 전조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징조라 부른다. 그런데 징조가 발생했어도 사람의 의지에 따라 그 전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운명은 우리가 미리 알아차리고 사전에 방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흐름, 운명의 전개는 고집스럽지가 않다. 얼마든지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물론 어떤 운명들은 우리가 하늘에 갚아야 하는 것으로 대단히 집요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조절할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의 힘이다.
영혼은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시간에 앞서 미래를 보고 그것이 싫으면 처음부터 거부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쁜 운명을 피해가기도 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윗덩어리는 그대로 흘러내려 가버린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중력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이것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자연현상일 뿐이다.
반면 운명은 자연현상에 비해 예측이 어렵고 직선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운명들은 소설처럼 기묘하고 어떤 것은 일부러 꾸며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일은 항상 새로움을 발생시키려는 압력을 받는다. 이를 우연이라고 하는데 우연이란 사실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발생하려고 애쓰고 애쓰다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그렇게 생겼다. 이를 ‘불확정성’이라고 얘기하는데, 크게 보면 우주도 계획 없이 우연히, 즉 불확정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힘을 주역에서는 양 또는 하늘의 힘이라고 한다. 이는 항상 새로움이 발생하는 원리다. 이 새로움 때문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또한 이것 때문에 돌발적인 사건에 직면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이런 현상들을 미리 발견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영혼이 우주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혼은 초월적 존재여서 한 곳에만 존재하지 않고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듯 보인다. 내가 있는 곳, 즉 몸이 있는 곳에 영혼이 징조를 보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예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감은 기분에 속하기 때문에 기묘한 느낌과 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예감이 발달한 사람은 위험을 잘 피해 갈 수 있다. 특히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감이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도박사도 예감 혹은 육감은 발달했는데, 사실 이런 힘은 우리 보통사람에게도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을 못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항상 예감이 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기묘한 느낌이나 기분이 도래하면, 이를 미래의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미래란 어떤 형태로든 우리 앞에 나타나는 법이다.
금지된 미래.
시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미래를 알고자 하는가. 더 나아가 신은 왜 인간이 미래를 아는 것을 금지시켰는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단순히 징조를 해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운명이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을 깊게 연구한 끝에 심원한 결과를 발표했다. 블랙홀 내에서도 정보는 손실되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에 있던 모든 역사가 보존된다는 뜻이다. 더 쉬운 말로 하면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복잡한 수학공식으로 풀지 않아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는 우주의 모든 역사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암리에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과거의 역사가 보존되지 않는다면 우주는 무의미해지고, 윤리적으로 죄라는 것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직감으로 이해한 것을 호킹은 깊게 연구해 그 결과를 세상에 내어놓았다는 것이다.
과거라는 것은 더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레일과 같은 것이다. 요지부동이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채 우리에게로 찾아온다. 과학자들은 미래란 확률적 존재라고 말하는데, 이는 수학적 개념을 빌려 표현한 것뿐이지 그 뜻은 정확하지가 않다.
미래와 과거는 현재라는 시점으로부터 존재의 양상이 현저히 바뀐다. 미래는 요동치는 존재다. 하지만 미래가 분명히 현재로 오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미래도 과거처럼 레일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미래는 존재할 뻔하다가 취소되기도 한다.
오늘은 분명한데 왜 미래는 정확히 알 수가 없는가. 이에 대해 스티븐 호킹은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미래를 아는 것이 자연의 법칙상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은 인간이 미래를 아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뜻이다. 미래는 알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조차 자연의 법칙이 금지시킨다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는 ‘미래’ 자체가 아니라 ‘미래의 일’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미래가 무엇이든 간에 어떤 미래가 현재와 이어져 내 인생에 나타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주의 진리.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없다면 우주는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우주도 없다. 우주란 인간이 있으면 있고, 인간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질문을 바꾸어보자. 미래란 무엇인가. 이는 현재가 찾아가는 곳이다. 과거란 무엇인가. 이는 현재가 이미 지나쳐온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란 무엇인가. 현재란 다름 아닌 관찰의 순간이다. 관찰이란 것이 없으면 현재는 없다.
운명의 종류는 아주 많다. 어떤 것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또 어떤 것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먼 미래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부자가 된다거나, 직위가 높아진다거나, 명예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산다. 그러나 어째서 막연히 자신에게 그렇게 큰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여기서 잠시 우주의 진리를 생각해보자. 우주는 보면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의 운명과도 같다. 미래란 무한한 가능성으로 아지랑이처럼 널려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미래는 틀림없이 올 것이다.
이는 흔히 이야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 심상화의 원리와 동일하다. 그러나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그것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 안된다.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미래의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주 그럴듯하면 그는 미래를 본 것이다. 그가 본 미래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면 있는것이니까. 이것은 우주의 진리이다. 미래에 되고자 하는 것을 현재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행동하라. 마치 내일을 아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그럼 당신은 그렇게 될 것이다.
리뷰.
세상은 뜻으로 가득 차 있다. 칼 융은 ‘상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것에 의해 인간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간이 움직이면 세상도 움직이는 법이다. 인간의 행동은 모든 것이 상징이다. 그리고 인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은 인간에게 어떤 상징을 준다.
우리는 환경을 접하며 살아가고, 환경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예 따라 행복이나 불행도 만들어진다. 우리가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을 개선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환경을 느끼기 때문에 내면세계가 행복하고, 불안하고, 즐겁고, 슬프다.
다만, 우리는 실제 환경을 사실 그대로 알 수는 없다. 그저 마음으로 느끼는 상징을 실제 환경이라고 여길 뿐이다. 즉, 우리의 미래는 이 상징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영혼은 현재의 상징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모순 없이 잘 운행되고 있다. 운명이란 것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작용한 것을 되돌려 받는 반작용일 뿐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누가 특별히 이익을 더 받을 수는 없다.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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