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척하는 인간, 인간인척 하는 신 - 신과 나눈 이야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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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척하는 인간, 인간인척 하는 신 - 신과 나눈 이야기 ①

성민호 연구소장 2024. 1.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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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의 끝자락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지쳐있었다.

사실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는 표현이 옳았을 것이다.

잠을 청하려해도잠이 오지 않았다.

조그만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았다.

이내 종이와 펜을 꺼내들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니었다.

울부짖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세상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마구 퍼부어댄 편지.

혼란과 비틀린 심사와 비난으로 가득한 편지.

한 무더기의 분노어린 질문들로 써내려 간 편지.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늘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고 대답해 주는 이 없는.

쓰디쓴 마지막 질문을 휘갈기고 펜을 내던졌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내 두눈을 의심했다

내 손은 종이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누구도 대답을 해줄리 없는 이 적막한 방안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답을 받았음을 알게되자

알 수 없는 감정과 눈물이 터져나왔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너와 함께 있었다.

 

우연의 일치

우주에는 어떤 우연의 일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네 마음이 울부짖는걸 들어왔다. 나는 네 영혼이 찾아헤메는 걸 봐왔다. 나는 네가 얼마나 간절히 진리를 바랐는지 안다. 너는 고통 속에서 그것을 달라고 소리쳤으며, 기쁨 중에도 소리쳤다. 너는 끝없이 내게 간청해왔다. 나를 보여주고, 나를 설명해주고, 나를 드러내달라고.

 

지금 여기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라. 무엇이든 다. 내 힘껏 대답해주리라. 네가 어떤 질문을 던지기만 하고 대답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을 열고 귀를 기울여라. 네가 듣는 노랫말과 네가 읽는 다음번 신문기사와, 네가 보는 다음번 영화의 줄거리와, 네가 만나는 다음번 사람의 우연한 중얼거림에, 그게 아니라면 네 귀를 간지럽히는 강과 바다와 바람의 속삭임에. 이 모든 것에서 너에게 대답해주리라.

 

이 모든 길이 다 내게로 열려있다. 네가 귀담아듣는다면 나는 네게 말할 것이며, 네가 나를 초대하면 나는 네게 갈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네게 보여주리라. 그 모든 방법으로.

 

우연의 일치란 없으며,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나 모험은 참된 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너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사랑의 한끝

너희는 환상 속에 살고 있으며, 그 때문에 두려움에 시달린다. 신을 의심하겠다는 너희의 바로 그 결심 때문에. 너는 부처처럼, 예수처럼, 그리고 너희가 일찍이 숭배했던 그 모든 성인처럼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성인들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너를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니가 느끼는 평온함과 삶의 기쁨과 마음속의 법열을 설명하려 들면, 그들은 말을 듣긴 하겠지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너의 말을 따라하긴 하겠지만 거기에 덧붙이려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찾지 못한 걸 네가 어떻게 찾아냈는지 궁금해하다가, 이윽고 질투를 키워갈 것이다. 질투는 얼마 안 가 분노로 바뀌어, 그들은 화를 내면서 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너라는 걸 납득시키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너가 느끼는 기쁨에서 너를 떼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너를 해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죽음조차도 니 기쁨을 방해할 수 없고 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하면, 그들은 분명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평온함을 보게 되면, 그들은 성자라 부르며 다시 너를 사랑할 것이다. 자기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사랑하다가 파괴하고 다시 사랑하는게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가장 깊은 단계에서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에서 시작된다. 사실 영혼의 언어 속에는 단 두 가지, 두려움과 사랑만 존재한다. 이 둘은 너희가 상대성이라 부르는 체계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두 극점, 알파와 오메가다. 이 두 극점이 없다면 어떤 다른 개념도 현상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랑이나 두려움,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밖에는 다른 어떤 행동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의 모든 개념은 이 둘의 파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의 자유다.

하지만 너희는 두려움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한다. 너희가 이제까지 배워온 게 바로 그런것이기에. 그러나 너희가 사랑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할 때 너희는 생존 이상을 하게 될 것이고, 이기는 것 이상을 하게 될 것이며, 성공 이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충만한 영광을 체험할 것이다.

깨우쳐주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 내면의 소리다. 너희에게 가장 가까우나 내가 말하는 가장 큰 소리다. 그 소리는 너희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정하고, 배의 진로를 잡고, 여정을 이끌어주는 레이더다.

그 소리는 너희가 읽고 있는 바로 그 말들이 사랑의 말인지, 두려움의 말인지 당장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준다. 너희는 그 이야기에 따라 그 말들을 유의해야할지 무시해야할지 결정할 수 있다.

신의 메시지

느낌은 영혼의 언어다. 만일 어떤 것을 놓고 무엇이 자신에게 참인지 알고자 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라. 느낌이란 건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경우도 자주 있다.그러나 가장 내밀한 느낌 속에 감춰진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진실이다.

나는 생각으로도 교류한다. 생각과 느낌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생각으로 교류할 때 나는 영상을 자주 사용한다. 그 때문에 교류 도구란 면에서 생각은 단순한 말보다 효과가 크다.

느낌과 생각 외에 나는 체험이라는 전달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체험은 참으로 위대한 전달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낌도 생각도 체험도 모조리 실패할 때. 나는 말을 쓴다.

사실 말은 가장 비효율적인 전달자다. 말은 너무나 빈번하게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를 낳곤한다. 말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말은 그저 입 밖에 내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느낌과 생각과 체험을 드러내는 소리. 말은 상징이자 기호고 표지다. 말은 진리가 아니다. 말은 실체가 아니다.

너희가 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너희에게 앎을 주는 것은 체험이다. 물론 너희가 체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앎의 다른 도구들도 주었다. 느낌과 생각이라는 도구들을.

그런데 여기서 최고의 역설은 너희가 신의 말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체험은 아주 하찮게 여긴다는 점이다. 너희가 어떤 것을 체험하고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사실로 알고 직관으로 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말이란 너희가 아는 것을 상징으로 나타내고자 할 뿐이어서, 흔히 너희의 앎을 어지럽힌다.

너희의 가장 고귀한 생각. 가장 명확한 말. 가장 강렬한 느낌은 항상 내 것이다. 그보다 덜한 모든 건 다른 출처에서 온 것이다. 가장 고귀한 생각이란 예외 없이 기쁨이 담겨 있는 생각이며, 가장 명확한 말이란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며, 가장 강렬한 느낌이란 너희가 사랑이라 부르는 바로 그 느낌이다.

기쁨과 진리와 사랑. 이 셋은 서로 뒤바뀔 수 있으며, 하나는 언제나 다른 것들을 가져다준다.

이제 남은 단 하나의 문제는 내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아닌가 뿐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 메시지를 대부분 그냥 흘려버린다. 너희는 분명 무언가를 놓쳐왔다.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너희가 이해하는 것은 너희에게 옳게 여겨질 것이다. 옳다 자체가 자신이 동의하는 어떤 것을 가리킬 때 너희가 쓰는 용어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놓친 것은 처음에는 틀린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옳다면 어떻게 되는가?

 

삶의 의미

삶은 발견이 아니라 창조다. 너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인생이 너희를 위해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너희는 순간순간 너희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신의 형상대로, 신과 닮은꼴로 창조했다. 신은 창조자다.

너희는 하나 속에 셋인 존재들이다. 너희는 이 세측면을 너희가 원하는대로, 성부, 성자, 성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마음, 몸 영혼이라 할 수도 있으며, 초의식, 의식, 잠재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다.

창조는 너희 몸의 이 세 부분들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다. 달리말해 너희는 세 가지 차원에서 창조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 창조의 도구들이다. 모든 창조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모든 창조는 말로 옮겨간다. 모든 창조는 행동에서 완료된다.

너희가 생각은 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는 것은 한 차원에서만 창조한다. 너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창조한다. 너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희 현실에 구현된다.

너희가 진정으로 믿지 않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창조 과정에는 반드시 믿음, 즉 깨달음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소망 너머에 있으며, 확실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따라서 창조에는 언제나 깨달음이 수반된다. 깨달음이란 본능적인 명확성, 완벽한 확실성, 어ᄄᅠᆫ 것의 현실성에 대한 완벽한 인정이다.

깨달음의 이 자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감사의 자리다. 그것은 미리 하는 감사다. 그리고 아마도 창조하기 전에 창조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것이야말로 창조의 최대 열쇠 일 것이다. 그 같은 당연시는 신이 격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깨달음의 확실한 표지다. 모든 선각자는 그 행동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안다.

너희가 창조하고 또 창조했던 모든 것을 찬양하고 즐겨라. 그것의 일부를 거부하는 건 자신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다. 너희 창조물의 일부로서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너희가 그것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옹호하고, 그것을 축복하고, 그것에 감사하라. 그것은 비난하지마라.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니.

설사 창조의 일부 측면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것을 축복하면서 그냥 다른 것으로 바꾸러알. 다시 선택하라. 새로운 현실을 불러오라.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하라. 이것을 장대하게 해내라. 그러면 온 세상이 너를 따를 것이다. 그것들을 큰 소리로 외쳐라. 나는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창조력을 지닌 진술이다. 나는 이란 말 다음에 네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말 다음에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나는은 그 체험들에 시동을 걸고, 그 체험들을 불러내며, 그 체험들을 네게 가져다준다. 우주가 아는 작동법은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너희가 신이다

생각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너희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환상을 창조해냈다. 나는 심판하거나 벌을 주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너희는 자신이 상상하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두려워 하지 마라. 감정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두려움은 너희에게 가장 두려워하는 걸 체험하게 할 것이다.

명심해라. 존재하는 건 오직 사랑뿐이다. 그것만이 유일하고 그것만이 전부다. 사랑의 감정은 너희가 신을 체험하는 것이다. 지고한 진리 중에 지금 존재하고, 일찍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은 사랑뿐이다. 너희가 절대계로 들어갈 때 너희는 사랑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상대계를 창조한 것은 나 자신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상대계는 너희와 내가 우리 자신을 체험으로 알기 위해서 지어냈고 지금도 지어내고 있는 창조된 현실이다.

그 창조물은 흡사 진짜처럼 보인다. 그것을 창조한 목적 자체가 우리가 그것을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히 너희가 신이라는 개념을 알려주기 보다, 너희 스스로 신이 되는 쪽을 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상대계를 창조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의 대립물을 창조했다. 그 영역에서 존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는 오직 두 곳 두려움과 사랑 뿐이다. 두려움에 뿌리박은 생각들은 또 다른 종류의 드러냄을 만들어낸다.

이 행성 위를 걸었던 선각자들은 상대계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것의 실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각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순간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사랑만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너희는 배워야 할 어떤 것도 갖지 않은 채 지금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너희는 이미 알고 있는 걸 밝히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밝힘으로서 너희는 그것이 제 기능을 다하게 만들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삶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그것에 목적을 부여한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삶을 거룩한 것으로 만든다.

 

너희는 이미 신이다.
단지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본문의 일부내용은 신과나눈이야기 1편과 나의 개인견해를 담았다.

 

당신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신의 존재를 부정해오던 지난날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듯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져있다.

 

이 책을 펴낸 작가인 닐 도널드 월시와

신이라 주장하는 존재의 대화는 1992년부터 시작되어 1995년까지 3년간 지속되었다.

 

그가 주장했던 신과의 대화는 매일 새벽 430분경,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다린 후,

그것을 글로서 받아 적는 것이었다.

 

물론, 항간에서는 이 책의 일부 내용을 보고,

신의 이름을 빌려온 한낱 사기꾼의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이란 그만큼 두려움과 경외심을 자극하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부감과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만 갖출 수 있다면 어떠한 책에서도 얻어갈 수 있는 교훈이 분명 존재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 1권에서 3권을 합친 완결편.

신이 말해 준 것에서, 신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는 너희는 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항상 느끼고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던 질문들.

그것에 대한 색다른 대답을 이 책의 시리즈를 통해 어느정도 받을 수 있었다.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이미 신이자, 창조주라면.

그리고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이라면,

당신은 신인척 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인척 하는 신인가.

 

다음편에서는 신과나눈이야기 2편으로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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